이직
나의 2022년을 한 단어로 요약하라면 "이직" 일 것이다. IT로 업종을 변경해 회사를 다닌 지 8개월이 되던 2월부터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고 있다 보니 면접을 자주 보기도 힘들고, 면접 때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부끄러움과 면접 결과가 남긴 데미지로 인하여 면접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연차를 낸 날에는 하루에 면접을 3개 몰아보기도 하고 그랬다. 결국 이직을 하는 데에는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다른 분들도 이럴까? 했는데 주변의 다른 분들은 한두 달 안에 이직을 잘만 하시는 걸 보고 "오... 내가 쪼렙이라 그렇군.."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ㅋㅋㅋㅋ....
면접을 계속 보다보면 이런 고민도 들었다. "난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잘하고, 뭘 하고 싶지?"
돌이켜보면 처음 국비를 들었던 순간부터 가장 짜릿했던 경험을 꼽자면, 파이썬으로 웹사이트를 만들던 경험이었다. 데이터를 불러오고, 화면에 데이터를 뜨게 하고, 텍스트로만 존재하던 데이터를 화면에서 원하는 모양으로 구현되게 하는 게 너무 짜릿했고, 즐거웠고, 재밌었다. 그 당시 내가 듣던 데이터/AI 국비에서 파이썬으로 코딩을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직군이 데이터 엔지니어라고 여겼고, 운 좋게 처음 면접을 봤던 회사에 합격해 데이터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며 즐거웠고 짜릿했고 탄성이 나오던 경험이 전 직장의 업무에서는 없었다. 일단 내가 잘못 생각했던 탓이 컸다. 개발이 짜릿했으면 개발자가 됐어야지... 그리고 파이썬으로 코드를 짜는 것보다 쉘 스크립트와 yaml 파일을 만지는 일이 더 많았다. 서버에 들어가서 CLI를 통해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설정을 조절하며 성능을 최적화하는 업무가 주가 되었다.
데이터 엔지니어의 업무가 A부터 Z까지 있다면, 전 회사에서의 나는 갈수록 A만 담당하게 되었다. 다른 데이터 엔지니어들이 여러 업무를 하는 것이 부러웠고 궁금했다. (책과 강의로 찍먹은 해보았지만 실제로 업무로 하는 것은 다르니까). 사수에게 상담을 해 보기도 했으나, 이미 사수님은 나를 A 전문 인력으로 만들겠다고 마음을 굳건히 먹으신 상태였다.(왜죠...) 언젠가는, 마지막으로 파이썬을 업무에서 만져본 게 근 1년이 다 되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사실 전 회사에서 했던 일들이 정말 데엔의 업무였을까? 데엔의 업무 중 하나이기는 했을 것이다. 신입이니까 하고 싶은 업무보단 일단 팀에서 신경 쓸 여력이 없는 일을 맡는 것도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 직장에서는 지금을 견뎌내면 미래엔 내가 욕심나는 일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희망이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다.
그러던 중 트친님이 "우리 팀 오면 프론트엔드부터 백엔드와 EC2와 EKS 다 다룰 수 있다"라고 하셔서 혹해서 트친님이 계시는 SRE팀에 지원하게 되었다. 추천 엔지니어, 데이터 엔지니어로 지원만 해오다가 직무를 바꿔 지원한 건 처음이었는데... 정말 SRE에 관해선 아는 게 1도 없고 기초적인 지식도 부족함에도 운이 좋게 면접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이켜 트친님의 말을 생각해 보면.. 진짜 맞는 말이다. 물론 저 업무만 있지 않다. EC2와 EKS에서 돌아가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무가 주이다. 하지만 SRE들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노가다 극혐" 기질에 힘입어 웬만한 반복 업무는 코드로 자동화하려고 하고, 그걸 좀 더 손쉽게 서비스로 제공하려고 관리자 사이트를 만들어 제공하는 팀이 현재 내가 속한 팀이다.
수습 기간동안 정말 허접하고 간단한 코드였지만 파이썬으로 백엔드 코드를 만들고 이걸 쿠버네티스 환경에 띄우고, DNS를 통해서 노출되도록 세팅을 하기도 했다. 회사 서비스의 메인 화면에 이벤트성으로 들어가는 거라 잘 안 작동하면 어떡하지 하고 이벤트 첫날에는 새벽에도 세네 번씩 깨서 화면을 확인했다 ㅠㅠㅋ 그리고 실제로 내가 기여한 서비스를 다른 분들이 언급하고, 신기하게 봐주시는 경험이 너무 좋았다. 이직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경험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현 회사의 A를 개선했다 ^^ 놀랍게도 전 회사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로 했던 일을 현 회사에서 SRE의 업무로 할 수 있었다... 회사마다 R&R이 달라서 그런가? 사실 하면서 엄청 즐겁진 않았는데.. 회사 일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내가 잘 아는 영역인 A를 통해서 성과를 내고, 다른 업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행히 지금은 다른 것들도 맡게 되었는데, 2023년에 하게 될 업무들이 설렌다. 지금 팀원 분들과 함께하면서 "와 나 정말 운 좋다.."라고 느끼는 것처럼, 나도 유능하고 좋은 팀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지.
스터디
2022년에는 열심히 스터디를 하면서 보냈다.
먼저 컴퓨터 관련 전공이 아니다 보니 기본기를 쌓자 싶어서 CS 스터디를 시작했다. CS50 스터디를 시작으로, 실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전공자들이 듣는 전공 필수 과목인 자료구조, 알고리즘, 이산수학, 운영체제, 데이터베이스 등등을 스터디를 결성해 차근차근 들어나갔다.
한번에 스터디를 6-8개 하다 보니 솔직히 다 감당이 안되어서 8월쯤에는 참여를 반만 한 스터디도 있다. 무조건 많이 벌린다고 능사가 아니었음을 절절히 느꼈다. 그래도 2022년에 했던 스터디들은 다 궤적을 남긴 것 같다. 아직은 얕지만, 반복하다 보면 깊어지는 그런 궤적.
그래서 2023년에 다시 CS 스터디를 하고 싶은데... 이럴거면 방통대를 갈까 싶기도 하고 좀 고민이 된다. 그러면 학위도 생기잖아?...
독서
놀랍게도 2022년에 내 나이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러나 스터디 드라이븐 리딩으로 스터디 관련 개발책 비중이 상당하다. ㅋㅋㅋ... (공부한 책도 읽은 책으로 쳐도 되는 거겠지..?) 2023년에는 비개발 분야의 책 비중을 늘려야지 싶다.
행사 참석 & 네트워킹
코로나 이후의 첫 개발 컨퍼런스인 인프콘에 참가했다. 매 시간마다 세션을 들으려 했으나 세션 3개 들으니 머리는 과부하가 왔다.. ^^ 좀 쉬면서 네트워킹을 열심히 했다. 당근마켓 분들이 뒤풀이를 여셔서 참여했는데, 거기서 대화를 나눠본 분이 경력 5년쯤은 되셨을 거라 생각했는데 사실 1년 조금 넘으셨다는 말을 듣고 와 난 뭐지? 저분은 왜이렇게 뛰어나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뒤풀이 자리였지만 개발 얘기가 새벽 두 시까지 오가는 훈훈한 술자리였다,,
개발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모각코도 종종 열고 여러 분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위에서 언급한 이직의 기회를 만나기도 했고, 스터디를 열기도 하고, 열심히 사는 분들을 보면서 좋은 자극을 얻기도 한다. 나도 그런 자극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걸스인텍 멘토링
걸스인텍 코리아와 AWS가 함께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정말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AWS 소속의 멘토님마다 3~5명의 멘티가 한 조를 이루게 되고, 업무적인 부분 등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6주간 멘토링을 진행한다. 너무 좋은 멘토님, 멋진 멘티님들을 만나 모든 순간이 즐겁고, 건강한 자극이 되고, 많은 것을 배워갈 수 있었다. 멘토님이 현재 내가 일하는 분야의 전문가 셔서 정말 운이 좋다고 느끼고 있다.
현재 팀의 업무에서 너무 당연한 지식들이 나에겐 없었는데, 멘토링을 하면서 내게 부족한 부분을 멘토님께 제대로 배웠다.
우리 조는 이 책으로 스터디도 진행했다! 오래된 책이지만 기본기를 다지기 좋은 것 같다.
운동
이 분야의 일을 시작하면서 취미도 없어졌는데 운동이라고 했을 리가,,
이 업계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체력이 필수라며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들을 여러 분들에게 듣긴 했지만, 내 체력이 나쁜 편은 아니라 사실 운동이 절실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건강을 챙기고 싶어 닌텐도 링피트를 12월부터 꾸준히 하고 있다!
제대로 운동을 시작한 게 근 3년 만인데, 링피트는 스쿼트 한 번 할 때마다 온갖 오두방정을 떨며 잘했어! 대단해! 멋져! 완벽해! 같은 온갖 찬사를 해주니 운동할 맛이 난다,, 겨우내 열심히 하고, 봄이 되면 야외 러닝을 할 생각이다.
마무리
2022년에는 환경을 바꿨고,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조금씩 내게 부족한 것들을 채워갔다.
그리고 조금씩 일 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2021년보다는 낫게 하는 것 같다. 업무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예전에 IT 뉴스레터를 작성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터뷰한 분이 "신입 때에는 자기 전에도 업무 생각을 했다"라고 하셨는데 내가 딱 그 짝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하루종일 노트북을 붙잡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은 항상 하는 것 같다.
2023년에는 2022년의 나보다 더 성장해 있기를 바라면서, 이만 글을 마친다.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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